수부수빈차환락(隨富隨貧且歡樂) 잘 살든 못 살든 제 나름대로 즐거워야 하지 않는가? : 백거이
김 교수의 책따라 생각따라(104)
‘죽장에 삿갓 쓰고 방랑 삼천리,
흰 구름 뜬 고개 넘어가는 객이 누구냐?
열두 대문 문간방에 걸식을 하며,
술 한잔에 시 한 수로 떠나가는 김 삿갓’ - 이는 최근에 작고하신 1950년대 유명 가수 명국환이 부른 노래 가사이다.
우연히 서가에 있는 책을 40년 만에 다시 읽었다. 조선 시대의 방랑시인 삿갓 시인 김병연(金炳淵)의 일생을 그린 소설이다.
그는 57년의 생애를 기구하게 편력한 운명의 시인이었다. 그는 풍유(風兪) 시인이고, 서정(敍情) 시인이며, 패러디(Parody) 시인이었다.
김용섭은 서울대학교 문리대를 졸업하고, 사대부고와 용산고등학교 교사를 역임했다. 문교부 교과과정 한문 심의위원을 지냈으며 저서로는 <고등 한문>과 <완벽 종합 국어>가 있다.
조선 순조 11년 김병연의 조부 김익순은 선천방어사로 홍경래 난(亂)을 막지 못하고 포로가 되어 굴욕적인 항복을 하게 된다. 다음 해 김 익순은 사형에 처해졌고, 그의 가족은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당했다.
할아버지의 노복(奴僕)인 김종수가 황해도 곡산에 모자(母子)를 극적으로 피신시켜서 겨우 살아남아 신분을 감추며 살아왔다.
그가 성장해 향시(鄕試)에 응시했는데, 시제(詩題)가 ‘역적 김익순을 탄핵하라’는 것이었다. 그는 일필휘지로 글을 써서 당당히 장원 급제를 했다.
하지만 그 역적이 할아버지라는 집안 내력을 알고 나서 세상을 등지며 삿갓을 쓰고 전국 방방곡곡을 떠돌면서 객지에서 일생을 마쳤다. 그가 남긴 시는 약 1,000 여 편이 넘는다.
자연을 즉흥적으로 묘사한 그의 시는 어렵지 않은 한문으로 간단하고도 명료하게 묘사했다.
- 아향청산거(我向靑山去): 나는 청산을 향해 가거늘,
녹수이하래(綠水爾何來): 녹수야 너는 어디서 흘러오느냐?
- 송송백백암암회(松松柏柏岩岩廻): 소나무 잣나무 바위는 돌고 돌아,
수수산산처처기(水水山山處處奇): 물이며 산이며 가는 곳마다 기묘하도다.
- 비래편편삼월접(飛來翩翩三月蝶): 눈은 삼월에 나비처럼 훨훨 날아오르고,
답거성성유월와(踏去聲聲六月蛙): 밟고 지나가면 발밑에서 여름 개구리 울음소리가 난다.
- 일봉이봉삼사봉(一峰二峰三四峰): 한 봉우리 두 봉우리 서너 봉우리가
오봉육봉칠팔봉(五峰六峰七八峰): 다섯 봉우리 여섯 봉우리가 되었다가 일곱 여덟 봉우리로다.
수유갱작천만봉(須臾更作千萬峰): 그러다가 어느 사이 천만 봉우리,
구만장천도시봉(九萬長天都是峰): 구만리 장천에 모두 구름 봉우리로다.
- 일보이보삼보립(一步二步三步立):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걸음마다 서서 보니,
산청석백간간화(山靑石白間間花): 산은 푸르고 돌은 흰데 사이사이 꽃이라.
약사화공모차경(若使畵工模此景): 만일 화공에게 이 경치를 그리게 하면,
기어임하조성하(其於林下鳥聲何): 수풀 사이에 우는 새소리는 어찌 하려나.
그의 수많은 시 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은 해학시(諧謔詩)이다.
- 승수단단한마랑(僧首團團汗馬閬): 둥글둥글한 중의 머리는 땀 찬 말 불알이요.
유두첨첨좌구신(儒頭尖尖坐拘腎): 뾰죽뾰죽한 선비 대가리는 앉은 개 좃이다.
- 능능기중별무능(能能其中別無能): 잘한다 잘한다는 그 가운데 별로 잘하는 것이 없고,
월야삼경호부능(月夜三更呼夫能): 달 밝은 밤 중에 서방님 부르는 소리만 잘 할 게다.
- 명천명천인불명(明川明川人不明): 명천 명천 부르는 동네에 사람들은 밝지 않고,
어전어전식무어(魚佃魚佃食無魚): 어전 어전 떠들어 대는 곳에서 생선 한 마리 주지 않도다.
- 사각송반죽일기(四脚松盤粥一器): 사각 소나무 소반에 죽한그릇 놓였는데,
천광운영공배회(天光雲影空徘徊):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이 어른거린다.
주인막도무안색(主人莫道無顔色): 주인이여, 조금도 미안하게 생각하지 마시요,
오애청산도수래(吾愛靑山倒水來): 나는 청산이 거꾸로 물에 비치는 것을 사랑하오.
그중에서도 한글과 한문이 섞이는 시는 가히 천재적이다.
- 이십수하삼십객(二十樹下三十客): ‘스무<스므> 나무’ 아래에 ‘서러운<서른>’ 나그네가
사십촌중오십식(四十村中五十食): ‘망할<마흔>’ 동네에서 ‘쉰<쉰>’밥을 얻어먹어,
인간개유칠십사(人間豈有七十事): 인간으로서 어찌 ‘이런<일흔>’ 일이 있으려나,
불여귀가삼십식(不如歸家三十食): 집으로 돌아가 ‘설은<서른>’ 밥 먹는 것만 못 하리로다.
書堂乃早知: 서당은 내가 일찍이 알았는데,
房中皆尊物: 방 안에 있는 놈들은 제각기 잘난 척만 하더라.
生徒諸未十: 학생은 모두 열 명도 채 안 되고,
先生來不謁: 선생이라는 작자는 아직 보이지 않네.
마지막으로 소개하는 시를 한글 음(音)으로 읽어 보시기를.
김영안
한국서예협회장, 전 단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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